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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short, art is long/그림이 좋다

그림이 좋다!

dryoon 2021. 7. 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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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summer's Night
YANKEE CANDLE




돈을 주고 그림 어플을 구입했다. 무료 어플로 만족했던 내가 아무 목적과 생각 없이 만 이천 원의 거금을 들였다. 살짝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결재와 동시에 통장에 찍힌 숫자 앞자리가 바뀐 것이다. 새 어플에 적응하기 위해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영 쉽지 않아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너무 방대한 양의 영상 때문에 더 막막해질 찰나에 아주 시크한 썸네일의 영상을 보았다. 채널을 훑어보니 단순히 그림의 스킬을 알려주는 계정이 아니었다. '그림'이란 세계 안에서 이야기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영상을 서너 개 보았을 즈음 "무엇을 그릴지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먼저 그려보세요."라는 유튜버의 말에 서둘러 어플을 열어 빈 캔버스를 펼쳤다. 좋아하는 것. 어렵지 않게 떠올린 건 뜬금없게도 양키캔들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향 미드썸머나잇! 물 흐르듯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치 선부터 색을 고르고 칠하는 순간순간 무엇이 정답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렸다. 그저 내가 보는 캔들이 손에서 슥슥 그려 나와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다 그리고 보니 유튜버가 왜 좋아하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가 전부다.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을 담아 그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내가 그려온 것이 그랬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노무현 대통령, 탄천을 걷는 엄마와 아빠. 모두 좋아하는 마음이 담긴 것들이다. 나는 종종 선물할 일이 있을 때 양키캔들을 고른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어울릴 것 같은 향을 고르는 것이 내 마음을 담는 방법인 거 같다. 늘 선물에 대해 고민을 하면 엄마는 이런 답을 주었다.
"너라면 무엇을 가장 받고 싶어? 네가 갖고 싶은 그걸 선물로 줘."
받는 이의 모든 것을 고려해 가장 완벽한 선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론 과도한 고민으로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기도 한다. 어려운 고민 앞에서 엄마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고른 향이 담긴 캔들을 받는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았다. 내게는 그런 의미다.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캔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의미가 가장 잘 담겨있는,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이라는 것을!


내게 그림의 세계를 소개해준 D언니는 "우리 함께 그리자, 채윤아!" 하며 '그림의 여정'이란 말을 했다. 그림의 여정. 맞다. 그리면서 만나고, 성장할 수 있는 여정을 나는 이미 걷고 있었다. 나를 어디로 이끌어 줄지 모르는 그림이지만, 그것을 따라 계속해서 그리고 싶다. 때로는 말보다, 글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비춰볼 수 있는 그림, 그런 그림이 있어서 참 좋다. 그림이 좋다는 카테고리는 정말 '좋음' 그 자체다. 덤으로 누군가와 함께 그릴 수 있어, 따듯한 위안이며 더 큰 좋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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