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에서 느끼다 (3)
어느 세계

한 해가 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산을 넘다 보니 해가 지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정신을 차린 날은 정확히 '12월 1일'이었다. 아니, 여유를 되찾은 날이라고 하자. 잃어버린 여유가 다시 일상과 마음에 흘러들어왔다고 인식한 그날, 가장 먼저 몸이 아파왔다. 이제는 아플 차례라는 듯이 잘 걸리지도 않는 감기가 몸살과 함께 찾아왔다. 어찌 보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아픈 것이 차라리 좋았다. 그동안 나를 어지럽게 했던 모든 것은 타당했고, 그것을 견딘 나는 몸이 아플 정도로 고된 시간을 통과했다고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 이 모든 게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두문불출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말하는 대로 된 셈이다. 멍청한 핸드폰으로 허황된 바깥세상을 보는 것도 거의 하지 않았..

힘든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의 불안과 어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중이다. 지금은 그런 시기다. 곡을 쓰는 것은 나의 피와 살, 일상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막연한 결과물만 바라보고 가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쉽게 다치는 과정이다. 문득 곡 하나 발표하는데 이렇게 공 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음악의 모습을 한 내 존재의 일부임을 상기한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질지는 너무 중요한 문제 아닌가. 곡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언제나 깊은 곳, 중심에 있다. 그러니 힘든 시간이라 이름 붙일 수밖에. 점점 내 순서가 다가오고 있어 주말까지 반납하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밤늦게 ..

내가 한동안 열렬히 좋아하던 세계가 있었다. 일상 속에서 본능적으로 그 세계를 찾았다. 그곳은 마치 나의 유토피아였다. 내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그곳에선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현실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 세계를 떠올렸다.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당장 마음이 편해졌다. 그 세계를 떠올려는 것은 나에겐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곳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늘 '불'이 생각이 났다. 그곳에 있는 불은 항상 켜져 있었다. 꺼지지 않았다. 내가 그 세계에 갈 때마다 은은하게 빛이 났다. 가끔은 그 불이 불꽃처럼 팡팡 터질 때도 있었다. 나는 늘 터지는 불꽃을 보러 그곳에 갔지만 매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냥 은은한 불빛 주변에 있다 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