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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느끼다

12월의 나는

dryoon 2021. 12. 7. 22:43

 

 

 

한 해가 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산을 넘다 보니 해가 지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정신을 차린 날은 정확히 '12월 1일'이었다. 아니, 여유를 되찾은 날이라고 하자. 잃어버린 여유가 다시 일상과 마음에 흘러들어왔다고 인식한 그날, 가장 먼저 몸이 아파왔다. 이제는 아플 차례라는 듯이 잘 걸리지도 않는 감기가 몸살과 함께 찾아왔다. 어찌 보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아픈 것이 차라리 좋았다. 그동안 나를 어지럽게 했던 모든 것은 타당했고, 그것을 견딘 나는 몸이 아플 정도로 고된 시간을 통과했다고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 이 모든 게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두문불출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말하는 대로 된 셈이다. 멍청한 핸드폰으로 허황된 바깥세상을 보는 것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방에 들어앉아 가장 오락적인 것을 하려 했다. 언제가 여유를 되찾으면 하려고 했던 일들은 결과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조급한 마음이었을 때만 유효했지 진짜 여유가 생겨났을 때는 그때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았다. 

 

이번 달이 지나면 다음 달은 없다. 상상 속 달력에서는 다음 달이 보여야 하는데 나아갈 것 없는 벽만 보인다. 새로운 달력으로 갈아 끼울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마음은 더더욱 그러하다. 마치 끝이 보이는 삶과 같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삶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고생했으니까 잘 쉬고 잘 먹고 따듯한 연말을 보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일지 모르지만, 가치가 떨어진 계획들처럼 결말대로만 가기엔 아쉽다. 무척 아쉽다.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것이든 정리해야 한다.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이 길을 잃고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앞으로를 계획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고리타분했다. 은연중에 있는 내 방식에 대한 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널브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니 어른들처럼 고리타분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예측하지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할 것이다. 형체가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정리해야겠다.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조각들을. 그것이 맞춰진다면 무엇이 될지는 예측하지 않는 것으로 남겨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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